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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5년,9월 27일을 기다리며

정의파파 2023. 5. 23. 22:37

사랑하는 딸들에게.             (2005년.9월1일)

 

   정확히 42년전, 난 중2였다.

한 여학생을 짝사랑하기도 했고, 이해 못할 루소의 참회록을-,톨스토이의 인생론도 읽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고상하게 보여지고픈 어설픈 생각에서였지.

공부를 잘하면 출세를 한다고 들어왔고 그 출세가 어떤 종류의 성공인지는 알지 못했다.

 

30년전, 난 군에 있었다. 제대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다른 동료들은, 제대만 하면 사회에 나가 다들 중요한 자리에서 떵떵거리며 살 인물들인듯,통제 받으며 지내는 그 3년이 몹시도 억울한 듯한 모습이었다.

 

독신을 고집하던 나는, 20년 전 네 엄마를 만나 늦은 결혼을 했고 그렇게도 쉴 사이 없이 열심히 살아오면서 훌쩍 2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아빠에게 있어 학창시절은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던 시절임과 동시에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처럼 시험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고 권력과 돈으로 인간의 가치를 따지는 현실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학창 시절이 끝나고 부터 20년의 세월 동안 친구들은 저마다 천차만별 변했다.

학교 성적이 좋았던 애들은 그렇지 않았던 애들에 비해,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른바 "출세"를 했고 부러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난 공부와 성적에 관한한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다.

  학교 때 머리가 좋지 않은 듯 싶던 친구들도, 지금은 시장에서 거스름돈 한번 떼이는 일없이 계산 잘하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전하는, 똑똑한 어른으로 살고 있다. 지리와 세계사와 영어를 그리도 못하던 친구들이,

서울 한복판 혹은 지구 한쪽 어느 구석에서도 손짓발짓 열심히 둘러대어 대한민국 삼천리 강산을 잘도 알고 찾아온다.

  성적의 좋고 나쁨은 머리의 틔움이 조금 빠르고 조금 늦은 차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학교때 공부 좀 잘했다고 우쭐댈 필요도, 못했다고 의기소침 해 할 필요는 더더구나 없다.

너의 지금은 군에서 내가 겪었던 상황과 흡사하다. 제대만 하면 마치 무언가 일을 내고야 말,

중요한 인물이 될것 같은----,(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 딸들이 단풍맛을 알까?

들판에 누렇게 고개 숙인 볏단의 탐스러움과, 오히려 길가에 바삭거리는 낙엽의 풍성함을---.

  단풍맛을 아는 선배로서 말해줄 수 있는건, 분명 너희들의 지금과 앞으로의 몇 년은 ,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또한 많이 남은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지을 귀중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50년후, 2055년 9월27일!

너희는 60살도 넘는 할머니가되고 아빠는 아직도 건강한 청년으로 107세가 되는 날이다.

아빠가 그때까지 살아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날 나와 더불어 단풍 맛을 논할때,

  할머니로서의 너희들 모습은 어떠할까? 

 

   앞으로 50년!

   우리가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은 것같다.

후회없는 삶이 되도록 열심히 아름답게 살자!

뜻은 몰라도 스피노자를 읽으며, 쇼펜하우어를 논하며----,

그리고-,영어 문장 하나 더 외우며----.

 

2005년 9월 1일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