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고 싶은 도시 이탈리아 꼬모
어느새 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늘도 역시 비와 함께 출발한다.
이탈리아 여행 내내 비소식이 방송됐지만 우리가 직접 비를 맞은건 카프리에서다.
오늘도 비를 느끼면서 아마 하늘은 갤것이라 당연처럼 생각한다.
여행 마지막 숙소- Holiday Inn Milan Assago
밀라노 시내 남서쪽 에 위치하며 코모에 가깝다
밀라노 북쪽으로 1시간 30분을 달려 코모로 향한다.
코모 호수
코모는 도시 전체가 미술품의 전시장이라해도 좋다.
공원이며 오래된 건축물 성당이며 개인 정원등 어느것하나 예술품 아닌것이 없다.
허락된다면 몇일간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코모라는 말은 중세에 유럽을 돌아다니며 룸바르디아 양식을 퍼트렸던
석공, 건축가, 장식가들의 길드를 일컬었던
마에스트리 "코마네치"(=코모의 大家)에서 딴 것.
벽돌로 쌓은 벽과 모르타르를 사용한 건축법으로
이들의 작품들이 카탈루냐 지방과 독일전역에 건재하다.
코모(Como)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 코모 현의 자치 단체의 하나로, 코모현의 행정 구역.
밀란 북쪽에 있으며 코모호의 남단에 산맥으로 둘러 쌓여있다.
B.C.196년 시저가 갈리아인 들이 세운 고대의 코뭄을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로마의 학자인 대 플리니우스와 소 플리니우스의 출신지이고,
고대 로마 시대에는 노붐 오르가눔 코뭄으로 불렸다.
379년에는 주교관구가 되었으며
11세기에 룸바르족과 프랑크족을 물리치고 콤무네가 되었다.
1127년 룸바르디아 동맹과 프리드리히1세의 전쟁에서
프리드리히 편에 섰다가 밀라노의 침공을 받았다.
1183년 밀라노와 화친,
1335년 이후에는 밀라노의 비스콘티가와 스포르차가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 견직물산업이 발달하였고,
룸바르디아의 흥망성쇠에 따라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다
1859년 갈리발디에 의해 해방되어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유적지로는, 14-18C., 고딕과 르네상스양식이 어우러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시청사였던 브롤레(1215건축,1435재건축) 등을 들 수 있다.
인구는 1991년 86,000명이었고 2015년 조사 84,394명으로
25년 간의 인구 변동이 전혀 없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완편-,후니쿨라 탑승 매표소
자전거를 비롯하여 각종 탈것들이 렌탈된다.
후니쿨라 요금 왕복; 5.5유로
자전거는 코인을 넣고 빌려가면 된다.
후니쿨라-이탈리아에 와서 유난히도 많이 탔다
"무서운 바람부는 저기 저 산에 올라가자! 올라가자!
후니쿨라! 후니쿨라! 후니쿨라!"
후니쿨라와 관련된 옛 부속품 괘도의 일부
구름 저쪽 너머에 스위스 국경이 있다.
꼬모가 아름다운 이유가 이 곳이 알프스 자락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닳게 된다.
성 안드레아 성당 ( Chiesa di Sant’Andrea Apostolo)
이 높은 산 위에 어김없이 마을이 있다.
저 멀리 건너편 산에도 주택들이 박혀 있다
맑은 날에는 멀리 프랑스 국경도 볼 수 있다 한다.
San Maurizio와 Volta’s Lighthouse 의 집 매매 홍보 안내판.
사방에 환상적인 경치의 마을이 있단다.
걸어서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내려가고 올라오는 후니쿨라가 교행할 수 있도록 중간 지점 선로가 둘이다.
후니쿨라 내부- 사각의 2층 구조
여전히 산 위에 모여 있는 동네가 눈에 밟힌다.
저들은 물을 어떻게 조달할까?
높은 곳에 차는 다닐 수 있나?---
밀라노에 가까워지자 유독 유선 전동차가 많다
선로가 없는 전동 버스-. 중국 북경에서 많이 봤던 차다.
점심먹었던 식당-뒷편에 피자 굽는 화덕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