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리(Capri) 에는
신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고 로마시대에는 등대도 건설했다.
아우구스황제와 티베리우스 황제의 별장 터도 있고,
다이에나 비와 촬스 황태자의 허니문 장소로도 유명하다.
15세기 해적을 피해 취락이 형성된 후 현재 인구는 3,000여명.
캄파니아 주 나폴리시 카프리 섬에 위치.
카프리 섬의 동쪽과 중앙은 카프리, 서쪽은 아나카프리로 부른다.
마리나 그란데(항구)에서 카프리 중턱까지 후니쿨라
산 정상 Monte Soloro까지 곤돌라(Lift chair)가 운행 중
Marina Grande 항구
해변에 흔히 있는 모래밭이나 평지는 거의 없다
섬 전체가 거의 경사 진 길
♬그리운 추억의 푸른섬 카프리
온종일 물결은 출렁이고
♬수평선 저멀리 떠가는 구름
내꿈을 부르네 카프리♬
(후렴)동백꽃이 핀 모래밭 함께거닐던 길에
지금은 무심하게도 물결만 밀려오네♬
학생시절 노래를 통해 알았던 카프리--
수천리를 날아 드디어 마주한다--
오른쪽 차창밖으로 수직의 낭떠러지가 전개되는,
차 한대가 겨우 비켜가는 언덕 길을 운전 기사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택시 차고지. 이곳 마춤형으로 차가 작고 앙증맞다
지나 온 길은 섬 서쪽의 아나카프리 지방도로(Via Provinciale Anacapri).
해변에는 생업을 위한 터전들 산 윗쪽은 잘 꾸며진 별장들.
주변에는 해식동굴들-, 요트투어가 가능하다고 한다.
아나카프리에서 중앙의 카프리 지역으로 이동.
Municipio라는 간판으로 보아 이곳의 행정사무소 .
예쁜 골목길.
시원하게 내리뻗은 단애(断崖).
좌측, Hotel Weber Ambassador Capri.
숙박시설,별장과 식당,카페가 요소 요소에 박혀 있다.
산 중턱지점 광장.-마리나 그란데
광장에서는올라 왓던 길-,
Via Provinciale Anacapri가 보인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카페에 들어가 나폴리행 배를 기다렸다.
이럴줄 알았으면 절벽에 있었던
Hotel Weber Ambassador Capri에서 좀더 시간을 가질걸 후회했다.
이 섬의 교통 수단으로, 항구와 이곳을 연결하는 후니쿨라와,
항구와 산 정상 Monte Solaro 를 연결하는 곤돌라-,
" Monte Solaro Chairlift"(=솔라로 산 리프트 카)가 있다.
광장 전망대와 마리나 그란데를 이어주는 후니쿨라 매표소-.
후니쿨라 탑승을 위해 계단을 ---
나폴리행 페리에 승선했다.
나폴리(Napoli) 항 선착장
나폴리는 남부 캄파니아 주의 주도이다. 지중해의 주 무역항.
나폴리는 고대 때 "신도시"라는 뜻의 네아폴리스(Neapolis)로 불렸으며
통일 전까지는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인구는 백만 명, 광역 인구는 300만으로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 인구 밀집 지대.
지역 방언이 이탈리아어와 조금 달라 나폴리 어로 부른다.
근처에 국제공항이 있고, 주변에 베수비오 화산과 소화산이 있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건조하고 무덥다.
경제 순위가 이탈리아 103개 도 중 94위. 실직률이 20~30%에 달한다.
선박관련업과 관련보험업을 포함하여 5,200여명이 관강관련업에 종사하며
기업만도 370여개. 년간 관광객은 800여만명.
2개 철도 노선노선과 지하철도 있다. 이외에 푸니쿨라와 사철, 국철, 트램등.
사철은 폼페이와 서부 교외지역을 연결하는 치르쿰베 수비아나가 대표적.
나폴리 요리는 수세기 나폴리를 지배한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올리브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피자와 스파게티,
스폴랴뗄레, 토르타노, 모자렐라 치즈, 파스티에라, 바바 등이 있다
누오보성(Castel Nuovo
5개의 탑과 개선문 미술관,성당등이 있는 요새
나폴리의 역사
기원전 7~6세기 경 그리스의 식민이었던 “쿠마에‘인에 의해 도시가 형성.
그 이유로 그리스가 건설한 신도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로마가 통치하는 기간에도 그리스어와 관습을 간직한 곳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동고트 왕국, 비잔티움 제국, 노르만족의 시칠리아,
호엔슈타우펜 왕가, 아라곤 왕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나폴리-
부르봉 왕조 등의 지배를 받아 수많은 왕가와 왕의 유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266년 첫 프랑스계 시칠리아 왕이었던 앙주의 샤를이 나폴리로 천도하여
1282년 까지 시칠리아 왕국으로 있었으나
그 이후는 나폴리 왕국의 일원으로 되었다.
빈 회의 이후 나폴리는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로 100년 동안의 쇠퇴기를 거친 후
이탈리아 통합 왕국이 출범하자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복구.
전후 이탈리아의 산업화에 맞춰 이주 노동자들로 인구가 증가하고,
알파 로메오등 여러 국영 기업들 공장들로 이탈리아 남부 산업화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