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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쏘렌토

정의파파 2024. 7. 10. 15:00

오늘은 남쪽으로 나폴리를 간다.

피렌체부터  우리를 안내해온 가이드는 나폴리를 보면 실망할거라 한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통영, 여수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서양인이 말하는 미항(美港-Beautiful Port) 은 안전한 항구의 의미라는 것.

그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사실 3대 미항중의 하나인 시드니항도

우리나라의 통영,여수의 풍광에 비하면 그다지 아름다운 항구는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high pass를 Telepass라 한다.

 아직 까지도 카메라가 제대로 조정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발견한 사실이라 엎지러진 물- 어쩔 수 없다.

소나무 부분은-,로마의 4대 가도 중의 하나인 아피아 가도(Via Apia)

   달리는 버스에서-

 2천 년 전-, 로마가도는 상상을 초월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마차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은 길을 닦고 

   현재와 비슷한 공법으로 기초를 채워 그 위는 평평한 돌로 마감했다.

   길은 되도록 직선을 유지해 속도와 시간을 단축했고 이정표도 있었다.

   10km 마다 스타티오네스 혹은 무타티오네스로 불리는 휴게소도 있었고,

   70km 에는 만시오네스라는 역관을 두어 말과 사람이 쉴수 있도록 했다.

폼페이 시

폼페이에서 내려 현지 안내원을 기다린다.

박물관을  줄 서지 않고 입장하기 위해 준비한 가이드.(입장권 등)

 

폼페이(Pompeii)

인구 약 3만의 소도시.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 km 사르노 강 하구에 위치하고  

인근에 베수비오 산이 있으며

순례지인 산타마리아 델 로사리오 바실리카가 있다.

폼페이 고고학 박물관(Porta Marina) 입구

 

 B.C. 89년 로마에 복속되어 로마 상류사회의 휴양지로 알려지기도 했다.

 A.D. 63년 대지진이 발생.

 A.D. 79년 베수비오산 분화로 인근 헤르쿨라네움 스타비아이와 함께 묻혔다.

                  이 폭발로 폼페이 인구의 10퍼센트인 2,000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2000년 전에는 청색 선 부위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다 한다.

선 아래 원형의 돌출 부분은 배를 밧줄로 묶는 부분이었다고---

현재의 폼페이는 화산 활동으로 땅이 솟아나 생긴 도시.

잘 포장된 도로-, 중간 징검다리는 마차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었을까?

 

1549년 수로공사중 유적이 발견되면서 폼페이 유적 발굴이 시작되었다.

1748년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폼페이 발굴을 시작하여

             광장, 목욕탕, 원형극장, 약국 유적지등이 발견되었으나.

             이들은 값있게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취급하여 이송하고

             허술한 모자이크나 미술품 등은 마구잡이로 프랑스 왕궁으로 실어갔다

 누워서 잠든 상태로 발굴된 당시의 시신

1834년 영국의 에드워드 조지 불워 리튼이 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을 발간하고.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폼페이에 대한 관심을 갖기시작했다.

             국왕 빅토르 에마뉴엘 2세는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를 발굴대장으로 임명하고,

             조직적인 발굴을 지시하여 유적의 구획 정리와 함께

             본격적인 수리와 보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당시 죽은 사람들을 현시하는 방법도 동원됐다.

개? -강아지의 주검도 발굴됐다.

 

2010 11월에는 발굴했던 '검투사의 집'이 폭우로 인해 붕괴되기도 했다.

현재는 도시의 약 4/5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 

출토품들은 나폴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기도하는 자세의 주검

 

또 다른 주검과 함께- 당시의 생필품-,현대의 것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 고대 유적들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리석 문턱!

지금도 문을 만들어 끼우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빵(피자) 굽는 화덕--

놀랍다!!!

현재의 로마 전통 피자집에서 본 화덕과 똑 같다.

여기서 가까운 폴리는 피자의 본고장이다. 나폴리 피자를 대표하는 것은.

토마토와 마늘이 들어가는 마리나자 피자와, 

올리브유와 바질 등을 토핑하는 엑스트라 버진이 있다

1889년 나폴리를 방문했던 마르게리타 왕비의 이름을 딴

마르게리타 피자도 있는데 토마토, 바질, 모자렐라 치즈 등을 토핑한다.

피자는 2차 대전 당시 나폴리에 주둔한 미군을 통해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연자 맷돌-

맷돌 자체만으론 현대의 것보다 정교한것 같다. 

 목욕탕

개인용 욕조

목욕탕 벽에 공간을 넣은 2중구조이다.

 

당시 사람들 생각도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현재는 그 공간에 스틸로폼등 단열재를 집어 넣는다.

현재도 단열을 고려하지 않은-,

벽돌이나 부로크등을 한단 쌓기로 벽을 세우는 건축물이 허다하지만---

초입에 있었던 계단은 바로 이거였다!!. 

보도 블럭(인도)을 연결하는---

아마도 동물등의 배설물을 밟지 않게 하려는 배려?

뒤로 베수비오스 화산이 보인다.-휴화산!

        언제 터질지 모른다.

            지금, 현재그 일이 생길것을 가정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점심 식사를 위해 마을로 내려가는 중

 

아름다운 경치를 한시라도 빨리 소개해주고픈 가이드의 조바심이었을까? 

나폴리를 들르지 않고 쏘렌토에서 배를 탄것은 실수였다.

식사후 다시 박물관 입구로 돌아왔다

조금 더 걸으니 폼페이 열차역이 나온다.

쏘렌토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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