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 그리고 세습
요즘 개신교에 관한 세간(世間)의 관심은 교회의 세습과 목회자의 세금 납부 문제이다.
한 건물을 사서 개인 사유(私有) 교회를 목회하는 일들은 이미 흔한 일이 되었고
대형 교회들이 자신이 평생 시무했던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들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교회가 둘로 나뉘는 아픈 현실도 있지만 무난히 세습된 교회도 세상의 가십(gossip)거리로 많은 성도들이 그 짐을 함께 지고 가는 현실이다.
또한 수 10년을 이어온 목회자의 세금 납부 문제는 이제는 환부가 곪아 불원간 해결하고 넘어야 할 개신교의 오랜 숙제로 대두되고 있다.
교회의 세습은 옳은 것인가?
목회자의 세금 납부 문제는 옳은 것인가?
해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마태22:21)
본 블로그 "성전과 교회"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발상은 교회를-,
공동체로 인식하지 않고 건물 출입자들과 건물 자체만으로 보는데서 기인한다.
건물은 인위적인 것이라서
개인이 투자하여 건축하였다면 설령 사고 팔 수 있다 하겠으나 그로나 그에 속한 성도들은 분명 하나님의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3:16-17)
어떤 간 큰 사람이 감히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들을 싸잡아서 사거나 팔고 또한 자신의 가족에게 넘길 수 있을까?
주께서 주신 열쇠로 이방인들도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문을 베드로가 열 수는 있었어도(행전10장 욥바, 고넬료와 피장 시몬의집 베드로의 환상)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신비의 권세는 하나님께 속하는 것 이듯
교회를 이루는 성도는 하나님의 것에 속한다
하나님의 것인 성도들이 건물과 싸잡아 져서 다른 사람에게 인계될 수는 없다 .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세습하는 교회에서는 당회나 제직회 공동의회 등을 통하여 성도들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
어떤때는 세상의 온갖 불법들이 도입되어 세상의 법으로 봐도 부정한 방법으로 숫자의 우세를 만들어 세습을 통과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요식행위를 실행하면 할수록 갈등은 깊어지고 성도들은 상처를 입게 된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태18:6-7)라 하셨다.
이는 세습하는자와 성도들을 함께 연자 맷돌을 메여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행위인 것이다.
교회공동체는 하나님의 것이다.
가이사의 것, 즉 기득권자나 권세 잡은 자의 것이 결코 아니다.
목회자들의 세금 납부 문제도 그렇다.
구약에는 레위인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이 있다.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민수기18:26)”-
열한 지파가 하나님께 낸 십일조 중 십분의 구를 하나님께서 레위인의 소득으로 인정한 대목이다.
본 블로그 앞장에서 언급한 율법 조항으로서의 십일조의 존치 여부를 논외로 하고라도
하나님의 것으로 성도들이 낸, 헌금중의 일부를 급여로 받은 목회자의 소득은 국가가 부과 하는 납세 대상으로 보아 틀림이 없다.
교회의 세입에 관한 세금 부과가 아니다.
납세하는 행위는 오히려 목화자들에게 떳떳함과 자신감을 부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는 말씀 중에도
-물론 바리세파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지만-,
십일조를 받는 대상인 레위인에 관한 납세에 관한 예외 언급이 없다.
레위인도 제사장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13:6-7에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받을 자에게 바치라" 기록하였다.
성도들이 바치는 헌금중 얼마를 국가라는 권세에 복종하여 바치는 행위가 결코 반 성경적인 행위가 아니다(로마13:1-2)
말씀에 비추어 세금을 내는 것이 성경적이다.
혹시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에 시험 들게 하는 사안이 될지라도
오직 성경의 말씀을 쫓는 지도자를 성도들은 따를 것이다.
루터도 95개 반박문의 마지막 94, 95항에
“94 기독인들은 고통과 죽음과 지옥일지라도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95 그리하여 안전하고 평안함 보다 많은 환란(tribulations)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가톨릭을 빠져나와 500년을 지난 아직도 개혁이 까마득히 멀다는 현실은 종교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성도들이 드리는 헌금만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헌금만이 아닌 우리 삶의 모든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드려진 헌금만을 특별히 구분지어 "거룩하다" 혹은 "2중과세다" 계산하는 방식은 자칫 바리세적 사고로 오인될 수 있다.
생각이 깊은 세습자라면
혹은 아직도 세금납부에 주저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차라리 모든 것이 갖추어진 안락한 길을 버리고
꼭 그런것은 아니지만
가난과 역경이 기다리는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이 가신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