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와 이단
1960년대 초 내가 사는 동네는 전도관과 시온성이라는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새로 입문한 사람들뿐 아니라 오랫동안 기독교를 따랐던 사람들 중에도 가산을 정리하고 시온촌에 전 가족이 이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재로 내 친구 중 한사람은 장로교에서 전도관으로 개종하여 현재까지 그 쪽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던 60년대 말에는 등교해서 수업 전 시작되는 일이 장로교회 측 급우와 통일교회 측 급우들이 교리를 가지고 서로 옳다고 싸우는 일이었다.
당시 내가 소속한 교회 학생회의 전도 활동의 결과로 학급의 상당수가 개신교 친구들이었고
당시 한창 교세를 확장하던 통일교 친구들도 그 수가 만만치 않아 교실은 느닷없는 성경 토론의 장이 되곤 했었다.
수요 집회가 있는 어떤 날 밤-,
통일교회 소속 친구들이 교회로 몰려와 목사님 설교 시간에 갑자기 손을 들고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면서 손을 번쩍 든다.
순간 좌중은 얼음이 되었고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개인적으로는 개신교 예배 흐름에 비추어 도저히 있을 수 없었던 처음 보는 장면이었기에
얼마나 화나고 흥분되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친구들이 많이도 미웠다!
세월이 한참 흘러 현재는, 전도관은 쇠퇴하고 통일교는 잠잠해졌지만
1980년대 이후 줄곧 가정과 직장을 찾아 전도하는 2인조-“여호와의 증인”들의 방문은 끝이 없고 줄기차다.
개신교에서는 이들을 “이단“이라 부른다.
“이단”이란 무엇일까? 이(異;다를 이), 단(端;바를 단)
문자 그대로 바름이 다른것을 이단이라 한다. 달리 표현하면 바르다고 주장하는 것이 서로 다른것이 이단이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내용과 상대방이 옳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다른것이 이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바르지 않다는 결론은 누가 내리는 것일까?
물론 사람이 판단한다. 신학적 고찰을 통하기는 하지만----
굉장히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이스라엘이 성전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 성전에 성소와 지성소를 만들고 법궤를 안치 시켜 다시 속죄의 제를 행한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성전의 휘장을 찢어 성소와 지성소의 구분을 없애 만인 제사장 진리를 설파하셨고(누가23:45)
당신 스스로가 영원한 제물이 되어 다시는 속죄의 제사가 필요 없도록 하셨으며,
이제 다시는 제사가 필요 없어 건물 자체가 필요 없는 성전을 향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려지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가13:2).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축 행위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고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지구촌 기독인들이 힘차게 부르는 찬송-,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를 조롱하는 행위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이단아라 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이후 지금도 예수님이 메시아 이심을 인정치 아니한다.
이 점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이슬람과 비해 한참 더 심하게 다르다.
오히려 이슬람교도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으며, 예수님이 메시아 임은 부정하지만 마호메트 보다는 조금 못한 훌륭한 선지자로 추앙한다.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축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부정하는 것과 함께 기독교가 이단임을 선포하는 포고가 될 것이고,
기독교는 유대교(이스라엘)를 이단이라 선포하여 종교전쟁을 시작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당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는데
그 땅 끝을 찾아 사람들은 아프리카로-, 남미와 남극과 북극으로-,사마리아에 기초한 중동지역과 그리고 지구촌 오지를 향해 선교지를 넓힌다.
그 땅 끝은 과연 어디일까?
우리나라의 해남?
포루투갈의 --? 아니면 희망봉?
성경에 언급된 "지구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는 인식에 기초를 두고(욥기26:7),,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유대 땅을 출발하여 지구 끝까지 걷다 보면
마지막에는 다시 출발했던 장소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된다.
땅끝은 이스라엘이었으며 각자에게는 자신의 가정과 지역이 땅끝이 되는게 아닐까?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그날이 땅끝까지의 선교가 완성되는 날이고 이스라엘이 이단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날이 될것이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가끔씩 2인 1조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도차 방문한다.
수년 전 까지도 난 그들을 포함하여 소위 이단이라 지목받는 사람들의 방문을, 무슨 전염병 환자 보듯 대했다.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문밖에서 “난 교회 나간다“ 말하고 내 쫒았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들을 대하는 생각이 달라졌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착하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신앙인들의 자세를 본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 문자 그대로 여호와를 증거 하는 증인들이 아닌가!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 해서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다.
사고의 차이가 각종 교파를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더구나 이단이란 단어의 뜻이 그러하듯 생각이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나 우상을 숭배하는 미신과는 다르다.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한 소위 이단이라 칭함 받는 다른 교파도,
주장하는 내용이 다르다고 그들을 미워할 권리는 나에게 없다.
“나는 예수교인인데 고생들 하신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보낼 수 있게 됐다.
하나님께선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사이비 종파는 론외로 하고,
이단에 속한 자들의 문제점은
“자신이 믿는 방식만이 참 진리이고 구원이며 기존의 교회는 잘못 이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사고방식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기존 정통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구원을 받고 못 받고는 하나님께 속한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그것을 바꿀 수는 없다.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고 미워하는 행위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사랑을 정면으로 내 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단을 아웃시키자"는 어떤 캠페인이나 부흥 집회도 사실은 사랑과는 먼- 행위가 아닐까.
두려워 할게 뭐 있는가, 차라리 그럴 시간과 힘을 전도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단을 성토하고 두려워하는 행위는 소극적이며 하책에 지나지 않는다.
적극적인 상책은
각 교회는 책 잡힐 일 없이 더욱 거룩해지고 각 성도들은 교회 밖에서 저마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가라지의 비유에서 판단의 결과를 심판 날로 하셨고, 원수갚음은 하나님께 맏기라 하셨다.
형제를 실족케 하는 행위는 형제로 하여금 연자 맷돌을 지고 바다에 빠뜨리는 편이 낫다고
사랑을 강조하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에 있어서 유대교는 이단이다.
정통 기독교와는 많이 다르지만 예수님을 인정하는, 웬만한 이단 보다는 더 심한 이단이다.
1990년대 장로회 합동측 교계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존경하는 한 원로 목사님께 당돌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장로회 통합측)
“목사님! 교황 바오로 2세는 지옥을 갑니까?”
그 목사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답을 하셨다.
“구원과 이단은 별개의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