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쯤이던가? 내가 나가는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30년전인 1960년대 X-mas 때면 강단이 각종 성극이나 캐럴을 공연하는 무대로 변했던 똑같은 교회에서다.
물론 1960년대 목사님과 1990년대의 목사님은 다른 분이었다.
결혼식 도중 신랑 신부를 촬영하려 사진사가 강단 뒤편에 오르려하자
예식을 주재하던 목사님이 사진사를 강하게 제지 시킨다.
1960년대 했던 강단 개방이 30년 후 1990년에 오히려 후퇴하여 제지의 대상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강단은 일반인이 함부로 오를 수 없는 특정인만의 거룩한 장소로 되어 진 것이다.
2002년 이었던가 순회 집회 차 방문했던 한 교회에서는 대표 기도를 드렸던 장로님이 단상 의자에 앉지 않고 강단 아래로 내려가 앉는 것을 보았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장로님은 설교 중 단위에 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단만 그럴까?
2007년 어떤 교회에서 중앙 통로를 덥는 카펫을 깔았다.
교회 입구에서부터 강단 아래 쪽 중간 단상까지 카펫이 펼쳐졌는데
그 카펫 위를 한 청년이 신발을 신고 걷다 한 장로님으로부터 심한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의 교회당은, 그 건물 자체가,
거룩한 곳-.신성불가침의 곳인 “성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역대하 1장부터 4장에는 솔로몬이 모리아 산(현재 예루살렘 통곡의 벽 성전터)에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이 적혀 있다.
3,000여년 전,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급할 당시
하나님 배반하고 우상숭배 하기를 출애급 3일만에 시작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를 가까이서 보이시려고 법궤를 안치케 하시며 세세한 부분을 지적하시어 지으라 명령하신 성전이
이동식 성막이었는데
가나안 땅에 안착하여 다윗왕 때까지, 기브온 산당에 법궤를 안치한 천막으로된 성전을 솔로몬이 기억한 것이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 왕위를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역대하 2:1)
솔로몬이 자신의 왕위를 위하여 궁궐을 지으려 마음먹자 감히 천막에 모셔 둔 여호와의 이름이 송구스러워
차제에 여호와의 법궤를 안치하기 위한 성전 짓기를 결심한 것이이었지만,
사실 이 성전은- 여호와께서 지으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었던 성전 건축이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역대상17:4)
"내가 오직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으며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향목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역대상17:6)
"내가 네 뒤에--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나는 그의 아버지가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내가 영원히 그를 내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역대상17장)
이 성전은 2,500여 년 전(B.C.586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 의하여 처참히 불살라지고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지휘하여 B.C.515년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하였으나(스가랴 3장)
B.C.168년 에피파네스는 이 성전에서,
오히려 제우스를 섬기는 제사를 자행하여 하스모니아가의 반란을 야기 시켰고
(유태인들은 이 날을 하누카 절기인 봉헌절로 지킨다).
예수님 당시 이방인 헤롯왕이 이스라엘 민중의 민심을 얻기 위해
낡고 더럽혀진 스룹바벨 성전을 부수지 않고 다시 리모델링하는 식으로
B.C.20년 착공하여 9년 만에 외부공사를 끝내고
(예수께서는 당시 외부공사가 끝나고 서서히 건축되어지는 성전을 보셨을것이다)
A.D.63년 까지 80여년에 걸쳐 이전 성전 보다 훨씬 더 웅장한 성전을 완공하였으나
예수님의 예언처럼 완공 후 불과 7년 만에(A.D.70년)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고
지금은 성전의 서쪽 벽만 남아 이스라엘민족이 울며 기도하는 “통곡의 벽”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예수님은 당시 건축되어지는 웅장한 성전을 보면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태24:2)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성전을 헐라 내가 3일 만에 다시 세우리라”(마태26:61)는 말씀과는 다르다.
마태 24장 2절의 말씀은 다시 세우겠다는 말씀 보다 무너뜨려진다는 암시가 더 강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며 자신의 몸을 재물로 바친 순간 제사를 지냈던 성전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
둘로 갈라진 휘장은 그것을 꿰매어 다시 쓰라는 의미가 아니고 패기 됨 을 뜻한다.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의 단 하나 있는 "성전"의 원래 법궤를 모셔두고자 했던 취지는 법궤가 없으므로 상실됐고
예수께서 영원한 속죄재물로 스스로를 드렸기에 드리는 제사도 필요가 없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 있다.
우리는 교회를 보통 성전이라 칭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 나오게 하심을 감사한다고 기도한다.
감히 성전에서 함부로 망령된 행위를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당연하게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지금은 상징으로만 남아있으며
우리가 나가 예배드리는 곳은 사실은 그냥 “예배당” “교회당”으로 불려야 올바르다 하겠다.
예배당은 거룩한 예배가 드려지는 거룩한 모임임에 비추어
모임과 예배를 거룩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지 예배당 건물과 부속 기물이 거룩한 것은 아닌 것이다.
예수께서는 두 세사람만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도 내가 있을 것이라(마태18:20)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기록했다.
성전 된 개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다면 그 모임은 당연히 성전들의 거룩한 공동체이다.
그 공동체는 존중 받아야 마땅하지만 교회당은 그 공동체를 수용하는 건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마가11:17)(이사야56:7))
예수께서 성전에서 제사에 쓸 비둘기와 각종 제사용품을 파는 자들에게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격노하셨던 사건은
"기도하는 집"이라서 장사하는 것을 화내신것이 아니고 "만민이 기도하는 곳"에서 장사하는 행위를 화내신 것이다.
또한 성전 건물 안에서의 상행위 자체 보다는
집에서부터 준비한 정성이 없는-, 제물을 급히 현장에서 사고 또는 그것을 파는-, 또한 파는 권한마저 돈으로 거래되는
경건치 못한 비뚤어진 행위를 나무라신 것이었다
2000년 12월에 발행한 장로회(통합) 헌법(개정2판4쇄)
제1편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25장 5항(교리 편) 에는 교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었다.(현재는 수정되었음)
“천하에 있는 가장 순결한 교회도 혼합과 과오에 사로잡혀 있다.
어떤 교회는 너무나 타락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라 하기보다 (사단의 공회당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현재 성전이 없다.
유태인들도 흩어져 있는 각 지방에서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예루살렘 성전의 흔적인 통곡의 벽 옆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머리에 키퍼를 착용해야 입장할 수 있다.
제사장들에 의한 짐승을 드리는 제사는 행해지지 않고 랍비에 의한 의식이 행해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원조 “거룩한 성전”과 “거룩한 제사”와는 현실이 너무 다르다.
최근 이스라엘에서는 모리아 산에 성전을 재건하고 그 곳에 법궤를 두어 옛 예배를 회복하려한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여 모리아 산의 바위사원인 AL-Agsa Mosque(알 아크사 모스크)의 소유권을 인정받아
이곳을 헐고 제4의 성전을 건축하려는 위원회를 결성했다한다.
2012년에는 방송에 설계도까지 공개했다 한다.
AL-Agsa Mosque(알 아크사 모스크)
성전의 건축은 너무나 가슴 설레는 일이지만
그 성전에서 다시 속죄제가 행해진다면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의 대속의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논평이 조심스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