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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종교개혁-,구약과 율법으로 부터의 탈출

정의파파 2024. 7. 4. 09:21

한국 개신교의 완전한 개혁!-구약과 율법으로 부터의 탈출!

Exodus from Jewish Orthodoxy in Old Testament,

perfect refomation for Korean protestant church

 

 구교회로부터 개혁을 외치며 튀쳐 나온 개신교가 종교개혁 500년을 맞았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된지 그것도 어언 100!

짧은 100년의 기간 동안 눈부시게 성장해온 한국 개신교가 현재 내외의 많은 사람들로 부터 개혁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누구나 한국 개신교의 개혁을 외치고 또 원하지만

그러나 정작 개혁의 핵심을 지적하는 일은, 목회자는 물론 신학자들마져 꺼리는 것 같다.

자칫하면 이단에 몰릴수도 그래서 여태까지의 명예와 신변의 평화로움에서 멀어질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과연 무엇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일까?

 

한국 개신교의 개혁! -그것은 바로 구약과  율법주의로 부터의 탈출이다!

 

우리 개신교가 당연시하며 습관처럼  수용하고 있는 율법주의란 무엇일까?

 

우선, 선민 이스라엘(혹은 유대)을 거의 우상처럼 복의 모델로 삼는다는 것이다.

부흥회 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씀중 하나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잘 섬겨 복을 받았고

적고 약한것처럼 보이는 국민과 국가가 정계 재계 과학 예술등 각 분야에서 세계의 리더로 군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과연 유대 민족이 여태껏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여 그토록 복을 받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심지어는 십자가형에 처한 사람들이다.

초대교회 때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내 쫒았던 자들이 아닌가?

사도들이 신약 성경을 이스라엘의 언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기독교 배척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따져보면 실상 B.C.500년경부터 1947 U.N.에 의해 독립을 선물로 받을 때까지 무려 2,500 여년을 나라 없이 유리하며(Diaspora) 살아왔던 민족이다.

이스라엘이 현세에 받는 복은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한 결과 그들이 복받음이 아니라

구약의 약속에 의한 조건없이 주시는 하나님이 끝없는 사랑의 결과 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개신교는 예수께서 그토록 벗어나도록 권유했던 율법을 이스라엘 민족과 접목하여 복의 근원으로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주일성수, 십일조 생활, 교회당 건물의 신성화등등---

이제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조차도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 율법이

사실상 우리 한국교회에 정착되어 잘 믿고 못 믿는 믿음의 척도가 되어 있다.

 

1. 복음(福音,Good news)의 올바른 이해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전했던 말씀을 우리는 복음이라 말한다.

바벨론과 로마의 식민치하에서500여년을 피압박 민으로 살아왔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복음으로 다가왔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11:28)

오랫동안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보이지 않게 그들의 마음을 내리 누르던 무거운 짐을 

예수께서는 벗게 해 주시고 쉬게해 주신다고 하셨다.

"짐을 벗게 해 주신다는"는 이 말씀 보다 더 반가운 복음이 있었을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8:32)

그들 스스로 잘 실천해 왔다고 자부하는 율법-곧 진리가 ,사실은 그들을 속박다고한 하시고 

진리를 제대로 알면 자유케되리라 말씀하셨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마태11:30)“

식민 통치로부터의 압박과 심지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많은 규례로 인하여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들에게

예수께서는 가벼운 내 멍에와 짐을 받으라 권하셨다.

사도바울은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고 적었다.  

당시의 상황에 예수는 바로 쉬게 하는 분이었고,

짐을 가볍게 하시는 분이었고,

그들을 자유롭게 하시는 진리 바로 그 자체이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한14:6)는 말씀은

-너희들이 진리로 알고 있는 율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리를 따르라-는 속삭임 이다.

요한복음1034절에는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로 지적하여 율법을 "우리"와는 거리가 있는 너희의 것으로 표현하셨다

오죽 당시의 바리세인과 율법사들이 예수님을 율법을 폐하는 분으로 치부하였으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온전케 하러 왔노라“(마태5:17)고 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이 말씀에서 율법이 불완전하다고 분명히 명시하셨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후 3:14)고 지적했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에베소 2;15 )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로새2;14)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골로새서2:20) 하시율법을 초등학문이라 꼬집으며 규례에 순종하는 것을 오히려 책망하였다

 

신약성경에 매번 등장하는 유대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공격은 율법 문제였다.

제사장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어 달 그들만의 이유를 찾던중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마가 14:58)

말씀 직후에 재판을 종결했고

스데반이 순교한 이유도,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행전 6:13)

그의 말에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들었노라고 한 후 돌을 던졌다.(행전 6:14)

수 많은 제자들의 한결같은 순교 이유도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새로운 계명을 전한다는 유대인들의 고발에서였다.

 

바울은 히브리서에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7;18)

108절에는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기에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기록 하였다.

예수께서는 금식 논쟁 후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새 포도주룰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 하느니라 (마태 9:16-17) 하시고

구약의 율법과 규례를-,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에,  새 계명을-, 새 포도주에 비교하여 

율법과 새 계명을 확실히 구분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