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망있는 인사가 한평생을 살면서
친일파니 사대주의니 극좌 혹은 극우라는 평을 받지 않고 살기는
매우 어려운 일 일것 같다.
말한마디-, 표현 한번으로 자칫 좌 아니면 우로 몰릴 수 있고
진보 아니면 보수적인 친구를 뒀다고 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좌나 우의 프레임에 씌워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영랑은-,
일제치하
스스로 원해서 혹은 살다보니 친일파가 된 문인,정치가들이 너무나 많았던 그때
어떻게 그들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었는지
새삼 이곳에서 그분의 시를 읊조리며 동경하는 시간이 됐다.
강진읍 한복판에 있는 영랑 생가.
군청 바로뒤, 아직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좁은 골목길 끝에
군민들이 정성들여 가꾼 흔적이 뚜렸한 모습으로 탐방객들을 기다린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은 봄길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래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서름에 잠길래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져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뻐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래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붙은 감닙 날라와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잦아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 들것네
전봇대는 시 새겨진 깃발이 감잎처럼 나부끼고
장꼬방(장광)은 시심을 불러 일으킨다.
영랑 김윤식의 집은 당시 유명한 세도가의 가문이었을성 싶다.
강진 들판이 한 눈에 드는-,
강물과 바다와 마을이
한꺼번에 전개되는 위치에 넓은 그의 집이 있었다.
뒷 쪽에 모란공원이라는 안내판이 있어 계단을 따라가 본다.
아프리칸 메리골드-----
각국의 모란꽃이름
미국; Callies Memory, Canary Brilliants, First Arrival
프랑스;Exotic Sun, MEnton Exotic, Canaval Nice, Cartouche,Palma de Mallorca,
독일; Cool Crystal,
네덜란드; Break Out
일본,중국등 여러 나라의 모란이 로지에 심어져 있다.
구암정 전망대 가는 길
구암정
구암정 산쪽 방향
구암정 3층에 오르면 강진읍내가 눈앞에 --
모란 온실
내부는 아직 정비되지 않은듯 싶다.
영랑모란이라는 새 품종을 육종하였나 보다
모란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고 원산지는 중국이었나 보다
난 최근까지도 모란과 목련을 혼동했었다.
이제 이곳에와서 확실하게 구분한다
가곡 "목련화"의 목련과 화투짝의 6월을 상징하는 모란은 다르다.
모란과 작약도 같이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여 꽃은 비슷하지만 종이 다르다.
모란꽃을 연중 볼 수 있는 기술을 연구중-.
페튜니아-
온실 입구, 페튜니아가 유별나게 크고 무성하다.
다시 김영랑의 옛집
부엌도 넓고-집안이 부유했음을 짐작.
툇마루,
달빛
감나무 그림자
학교터 였던 금서당.
약간 가파르긴 하지만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언덕에 누우니 멀리 강진만이 내려다 보인다.
올라오길 잘했다.
현 강진중앙초등학교의 전신인 서당-, 금서당.
내려 가는길
문인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거리-,
강진을 떠나면서 혹시 빠진곳이 없나 살펴보니
유명한 사찰 두군데.
영암 방면 길목에 있는 무위사와
다른 한곳은 장흥 가까이 있는 남미륵사
먼저 영암쪽 무위사를 찾았다.
월출산 무위사-
사찰의 규모가 어마어마했을듯 싶은데
인적이 드물어 한산하다..
사천왕 상을 지나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국보 13호)-조선 초기 불교 건축물의 모습
맞배지붕과 주심포양식,측면의 기둥과 보가 이루는 절제된 조화. .
3기의 국보 벽화가 모셔져 있는 법당이 어쩐지 한산하다.
불상과 불화는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로 손꼽힌다.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다시 증축
고려시대에는 선종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수륙사찰로
죽은 영혼을 달래 극락으로 인도하는수륙재를 행했다 한다.
차를 돌려 장흥방면으로 향했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아닌 옛 도로에서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니
먼곳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거대한 불상이 보인다.
마을앞 주차장-지자체에서 세운것일까?
진입로
조형물이 범상치 않다-태국쪽의 남방불교와 연관있나?
남미륵사 입구 종무소
울타리가 따로 없고 마을 한복판에 사찰이 들어서 있다.
김교각스님이 성불한-, 지장보살을 모신 만불전
중국의 구화산에는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을
지장보살로 섬기는 수많은 신도들의 참배객들로 붐빈다.
그런데 이곳에 지장보살?
두사람이 겨우지나갈 좁은 골목을 구비구비돌아 한참을
아미타여래상이 보인다.
돌조각 사천왕상, 어쩐지 으스스하다.
돌 조각 상들이 하도 많아 석재공장 느낌-.
민가에 너무 가까운 사찰-.
위로 올라서니 탁트인 전망이 나타났다.
36m의 거대한 아미타여래상
세계종교 미륵대종 총본산 남미륵사라고 한다
왠지 신뢰가 가지않는것은
너무 산만하고
중국 도교사원을 본뜬것 같기도하나 꼭 그렇지는 않고
외국인에 보여줄 수 있는 한국적 느낌도 강하지 않는-,
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즉흥적으로 마을 땅을 사들이고 돌로 불상을 건립한 것같은 느낌.
세계종교 미륵대종 총본산 남미륵사가-,
일반인들이 방문했을때
여유롭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사찰이 되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 확보
난립한 석조 조각물들의 재배치
넓은 통행로의 확보등이 우선되어야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