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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는 늙은이!!-비엔티안 야시장

정의파파 2024. 3. 18. 18:22

비엔티안(Vientiane) 의 역사                                                            

인구; 78만명, 면적; 4,000

항구가 발달한 교통과 경제의 중심지.

낮 평균기온이 년중 27를 넘으며 5~9월이 년 강수량 80%의 집중 우기.

라오스에서 가장 비옥한 저지대 평야이고 주변의 농부들은 쌀·옥수수,가축을 기른다

비엔티안 부근 메콩강은 작은 배만 항해할 수 있고  

타이의 철도 종점 농카이 까지는 정기연락선이 운행되고 있다.

비엔티안-루앙프라방- 사반나케트-베트남의 호치민 시까지 간선도로로 접근.

교역국이 베트남에서 타이로 바뀐 후에는

남동쪽에 있는 팍세가 비엔티안 대신 라오스의 주요 수입항이 되었다.

시사방봉 종합대학교가 있으며 파응굼대학, 리세비엔티안공과대학과

팔리어 연구소, 산스크리트 연구소, 

호파케오 국립박물관, 동사팡메우크 도서관 있다.

타일, 직물, 담배, 합성세제, 플라스틱 가방,양조,임업,강철제조업 등의 산업 이 발달.

 

13세기 말에 도시가 형성됐 

16세기 중엽 라오 족의 통일 왕조인 란쌍이 비엔티안에 도읍.

1690년에 술리냐웡사 왕 사후, 왕위계승 다툼이 발생,

1698 세타티랏 2 왕과 추방된 술리냐 윙사와의 분쟁으로, 란쌍 왕조가 분리

1706 술리냐웡사의 손자 킨 킷사라트, 인타솜 형제가 루앙프라방에서 독립 선언.   

            세타티랏 2-, 아유타야 왕국의 산페트 8세에게 원군을 요청,

1707년 아유타야의 군대가 비엔티안에 왔으나 협조하지 않아,

             -란쌍왕국은 루앙 왕조 (루앙프라방 왕국) 와 비엔티안 왕조로 분리 

1709년 분리후, 무앙 나콘의 영주 프라 프로무라사가 반란을 진압

1713년 아유타야 왕국의 계략에 의해 참파삭 지역이 참파삭 왕국으로 분리 독립.

1730 옹 분(푼나산)이 왕위를 계승

1770년 톤부리 왕조(시암)의 딱신 왕과 동맹 관계를 수립.

1773년 비엔티안과 루앙푸라방의 전쟁. 

            푼나산은 동맹 관계의 샴에게 원군을 요청 않고,

            샴과 적대 관계에 있던 꼰바웅 왕조(버마)에 원군을 요청.            

            원군 요청을 받은 버마군 지휘관 포스파라는

            원군 요청 사실을 루앙프라방 측에 고하고 싸우지 않고 양국을 장악.

1774 푼나산과 버마의 동맹군 이유로, 

             샴의 탁신 왕은 비엔티안 왕국과 표면적인 외교만 유지

1777 샴과 버마와 전쟁. 승리한 샴은 비엔티안을 침공하여 왕국을 속령.

1780년 샴 철군했으나 푼나산은 폐퇴한 캄크트 지역에서 사망.

1781년 샴의 딱신 왕은 비엔티안의 새로운 왕으로 차오 난타센을 옹립했다.

1782 샴의 푸타욧파쭐라록이 딱신 왕 죽이고-, 라마 1. 짜끄리 왕조 건국.

            비엔티안 왕국은 톤부리왕조의 샴으로부터 많은 자치권을 인정 받았다.

1787 떠이선 왕조(베트남)와 충돌, 베트남측이 승리-

             므앙 푸안이 비엔티안과 베트남(떠이선 왕조와 응우옌 왕조)의 공유 지역.

1798 차오 난타센 사후 왕위는 동생 인타라웡이 계승,

1799 인타라웡은 샴이 지휘한 버마 잔당 소탕작전에 참여.

1803년샴- 버마 잔당 소탕때의 사령관 차오 아누웡- 세타티랏 3세로 왕위.

1804 1829(세타티랏 3세의 치세)에 비엔티안 왕국의 황금기.

1807년 새로운 왕궁을 건립.

1808년 타트 파놈 다리의 건설 및 시분판 사원(농카이 주)의 건립,

1824년 세인 사원의 건립 등 각지에서 사원과 시설의 정비가 행해졌다.

1827 세타티랏 3 샴 짜끄리 왕조가 국내외로 혼란한 틈타서 독립을 선언.

              --비밀리에 방콕에 파병을 요청. 

             루앙프라방과 부왕 티사에 의해 전략이 샴에 누설- 시암이 침공, 반란 실패.

1828 세타티랏 3세 시암군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사망. -비엔티안 왕국 패망.

              -샴은 왕도를 철저히 파괴, 주권을 박탈, 영토를 샴으로 편입.

              이후에는 란쌍 왕조 지역인 루앙프라방에 의한 역사로 이어진다.

1899~1953 프랑스 총독의 주재지로서 프랑스령 라오스의 행정중심지.

1945년 일본이 잠시 점령

1975년까지 비엔티안은 가축의 선적 도살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송강이 내려다 보이는 풍광 좋은 호텔 식당에서 조식.

최빈국의 식단에 어울리지 않게 여느 호텔의 아침 식단에 손색이 없다.

 

오늘도 155km를 4시간 동안 달린다.

그제와 같은 산악 지역은 아니지만 물론 고속도로도 아니다.

창밖에 무슨 공장같은게 보인다.

혹시 시멘트 공장은 아닐까?  

 

두어 시간을 달리다 멈춘 탕원이라는 곳.

젓갈을 파는 곳이라 하여 "젓갈마을"이라 소개한다.

도로변에 늘어선 노점상같은 건물들이 길 양편에 20여m 뻗어 있다.

 "라오스 젓갈 사세요"!!! --딸이 가게 앞에 앉았다.

화장실 사용료; 4명 기준- 1$.

화장실 사용겸 한국 관광객이 심심찮게 들렀을 터인데 호객하는 일이 없다.

아마도 이곳에서 젓갈을 산 한국 관광객이 없었을 듯-!

내륙의 민물고기 젓갈류를 우리 관광객이 선호할리 없을것 같다.

이제 생각하니 혹시 민물 새우-토하젓, 젓갈류는 없었는지---  궁금해진다. 

비엔티안 가는 길에 단 한번 들른 한국인이 운영하는 기념품 가게.

여행전, 라오스 사람들은 순박하고 농촌 마을이 정겹다 들었는데

매장에서 만난 아가씨들!

판에 박은듯 비슷하고 예쁘고 순수한 모습이다..

사탕수수 원액을 젤리처럼 만든 과자는 고급스런 맛이 났다. 

포장한 마른 과일들, 맥반석 팔찌와 맥반석 목걸이를 교포 사장이 직접 판매한다.

 

길을 달리다 교차된 도로만 보면 반갑다.

그만큼 보이는 도로가 없기 때문.

시골 장터와 연결된 모양인데 빈 논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라오스의 발전 가능성-,

국민 연령의 평균치가 낮다는 것

  자주 눈에 띄는 건재상들----!!!.

건자재 수요가 많다는 것은  건설의 조짐이 보인다는 증거.

1월인데 모내기하는 모습을 본다.

양끝에 못줄을 잡고 늘어  선 사람들이 두세가닥씩 모를 심는 모습이

6-70년대 우리나라 농사철 모내기 모습과 똑같다.

어지럽게 이어진 전깃줄 밑으로

"기아와 현대"라는 간판이 선명한 자동차 판매장.

 

점심을 먹으러 들른 남능강 선착장.

선착장에 띄운 편의점에 눈에 익은 선풍기가 보인다.

물로 열을 식히는 물-선풍기.

우리 나라에도 "물콘"이라는 이름의 에어컨을 쓰는 곳들이 더러 있다.

지하수를 끌어 올려  수도관에 물이 흐르게 한 후

선풍기를 돌려 시원한 바람이 불게 한것!

선상에서 현지식 식사를 하는 동안

노래방기기에서 "내 나이가 어때서"가 흘러 나온다

봉사료로 두명에게 20$을 지불했다.

이 남늄강은(Nam Ngum) 중서부 내륙에서 발원하여

남늄저수지에서 한데 모아진후 남쪽을 빙빙 돌아 메콩강과 만난다.

 

밖으로 나오자 4차선의 시가지가 나왔다.

도로변의 상가 지붕이 모두 녹이 슨 함석 지붕-.

현지에서 만들었을까? 아니면 모두 수입?.

오면서  슬레이트 지붕과 슬레이트판을 파는 건재상을 보았다.

우리나라는 10여년 전부터 슬레이트판 판매를 발암 물질 이유로 금지했다!

 

25Km를 더 달리자 "한국타이어" 간판도 보이고-,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비엔티안에서 처음 들른 "탓루앙 사원"의 나무로 만든 와불상-

 

남방의 소승(小乘)불교는 북방의 대승 불교와는 달리,

타인 중심이 아닌 출가 수행승 중심 사상이 핵심이다

소승의 최초 경전에서는 부처가 되기전의 석존-수행자를 보살이라 칭하는데 

우리나라등 대승불교에서는 불자의 이상형을 보살(菩薩)이라고 정립한다. 

가족의 시신을 안치한 탑

사람이 죽으면 보통은 집에서 미이라 상태로 함께 지내며

또 지방에선 시신을 찢어 짐승들에 내어주는 형태의 장래도 치룬다고 한다.

일반인들중 부유한 사람들은 사원에 가족들의 시신을 태운후 안치한다고.

 

우리나라 불교(대승불교)가 대중구제에 중점이다면 이쪽은 자기 수행에 중점을 둔다.

대승불교가 재가(在家) 주의로 변화하고 있다면 소승은 출가(出家) 주의를 고집한다.

 

탓루앙 사원은 1566년경

프랑스 식민지 시대 펫사라트 왕자가 라오족 공무원들을 지휘해서 복구했다. 

 

소승불교에서는 수행 여부에 따라 아라한은 될 수 있으나 붓다는 될 수 없다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육다라밀을 닦으면 해탈하여 붓다가 될 수 있다 한다. 

더위로 많이 지친다.

적어도 34˚C쯤은 될것 같다.

소승불교는 분별적(分別) 방법으로 앎(智)을 깨닳는 엘리트 위주의 불교를-

대승불교는 무분별적 직관으로 (無分別智--般若;반야-깨닳음)

대중에  다가가는 불교를 지향한다.

소승불교에서는 정진하여 "아라한"에 도달하려 수련하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을 자신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지적하고

자기 구원에 앞서 남을 먼저 생각하는 자비를 앞세워

열반보다는 오히려 사파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추구한다.

 

밖의 공원으로 나왔다.

깨끗하게 잘 가꿔진 정원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다시 차로 이동-,오토바이들이 많이 주차된 독립기념탑 옆을 지나간다

저녁에 다시 오겠지만 지나가는 중 한 컷-,

Sisaket 박물관-왓시사켓, 왓은사원이라는 뜻 즉,. "시사켓 사원"이다.

사원 입구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짧은 바지,짧은 치마는  입구에 비치한 현지 치마로 가려야 한단다.

6840여기의 부처님 상이 안치된 사원.

 

소승불교에서 해탈이란 부처나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깨닳는 것이라 한다

초기 불교는 석가모니 사(佛滅) 100년후(아쇼카왕 당시 B.C.268-232),

보수의 상좌부와 진보의 대중부로 나뉘게 된다.

보수의 상좌부 즉 소승불교가 추구하는-

이상적 열반에 이르는 길이 너무 어려워 반발하여 나타난 움직임이 바로

진보의 대중부 즉 대승불교인것.

대승불교는 부처의 초인성과 절대성을 강조하며

사람의 마음이 원래 깨끗하다고 하여 (본래정,本淨)-보살의 미덕을 장려한다.

나무로 새겨진 불상들은 일부 부식,  동으로 주조된 상은 완전하다.

사원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신혼 부부를 만났다.  불심이 지극한 신랑 신부!

 

호파케오사원 입구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위해서 지은 왕실 전용 사원이라 한다.

한국식당 "훈"

아들 때문에 한국서 식당하던 어머니가 함께 와서 경영한다는데

김치찌게 솜씨가 한국 국내였더라도 일품일 곳.

식당 앞에 콜택시의 전화번호가 붙어 있다.

하지만-,외국 나가면 항상 사람을 완전히 믿어서는 않된다.

 

독립기념탑-프랑스의 지배로부터 완전 독립한것을 기념한 탑.

 야경이 괞찮아 한참을 걷기도하고 촬영도 했다

탑 위 옥상으로 오르는 길을 찾으려 하니 경찰이 계단뿐인 길을 막아 선다.

 

마지막 일정인 야시장엘 왔다.

오토바이 주차 거치대에 세워진 수 많은 오토바이들.

이곳은 가히 젊음의 천국이다.

임시로 세워진 포장 점포 사이로 비껴 가기 힘들만큼 사람들이 지나간다.

나이들은 대략 15-20세 정도?

생각보다 피부가 하얗고 얼굴들이 한사람이 수술한 것같은 비슷한 외모!

거의가 예쁘게 생겼다.

30세 이상의 사람들은 사실 지나다니기가 거북스러울 정도로 연령층이 낮다!

아니-,30세 이상은 여기서 노인으로 치부하면 된다.

파테트라오 정권이 집권한 후로 인구를 늘릴 계획으로 산아제한을 금지한 결과!!!!

너도 나도 손에 핸드폰을 들었다-.

씩씩하고 발랄한 청소년들이 거니는 한 밤의 메콩강변!!.

지나가는 10여세 정도의 깨끗하게 잘 차려입은 어린 신사? 한분이

입에 문 담배를 빼고서 길게 연기를 내 품는다.

-한 쪽 옆 입 간판에는- 담배는 건강을 헤친다는 계몽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뜨거운 한겨울의 밤이 깊어간다.

건너편 보이는 불빛은 캄보디아!!

 

비엔티안 국제공항.

万象(만상)-長沙(장사)간 항공길이 열렸나보다.

여기서 만상이라함은 100만마리의 코끼리를 뜻하는 난상 왕국-

즉,루앙프라방을 뜻하는건 아닐까?

넓은 의미의 난상 왕국인 비엔티안과, 중국의 장사 간의 항공편이 계통된 듯!!!

여기서 장가계를 여행하러 떠나는 여행객들이 상당히 있는듯----.

라오 항공 직원들이 우리와  같은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다.

학명이 "루브라플루메리아"인 하얀 "참파꽃"을 머리에 꽂은 스튜어디스들이 예쁘다.

이 꽃은 라오스 국화라 알려져 있지만 다음사전을 보니 국화는 "벼"라한다

 

한국에서 입을 점퍼를 기내에 들고 탔다.

아직 여기는 덥지만 한국은 영하의 겨울!!!

비행도중 깊은 잠에 빠져 4시간 30분의 시간이 금방 지났다.

무안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아직 컴컴한 새벽6시!!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