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비는 여행사에 따라 들쑥 날쑥.
호텔과 식사 문제, 몇가지 옵션이 있겠지만 다녀와서 생각하니 그게 그것.
코스와 일정이 별로 변할 곳이 없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내린 결론.
우기철만 피해서 성수기 아닌 때 싼 가격을 택하실 것을 강력 추천한다.
단, 여행지의 특성상 옵션(각종 놀이와 어드베쳐등)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
우리나라와의 시차가 2시간이라서 한국시간 12시가 이곳은 아직 오전 10시!
기내식이 아직 소화 되지 않았는데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한다.
어떤 여행사 일정표를 보면 라오항공 기내에서 밥을 제공하지 않는다 했는데
간단한 한끼 음식이 제공됐었다.
무안공항을 07시 30분 출발하여 5시간만에 루앙프라방에 도착-.
창 밖으로 티벳으로 부터 씻겨 흐른 황토빛 메콩강이 보인다.
20여년전 동남아를 비행기로 통과할 때
황톳빛 강물을 보고서 홍수가 난줄로 착각했었다.
메콩강은,
티벳의 동쪽(중국),양쯔강의 발원지 진사강과 가까운 지역에서 시작하여
대리석으로 유명한 중국의 대리(다리) 서쪽을 경유
중국,미얀마, 라오스의 이른바 golden triangle을 통과 후-,
미얀마,타이와 국경을 이루며 루앙프라방에 이르러 라오스 내륙을 잠시 관통한다.
아직 긴팔 셔츠가 그다지 거북스럽지 않은 온도.
한국에서 두꺼운 점퍼를 입었던 관계로 신발,바지,셔츠는 그대로 입은체
점퍼만 케리어에 담았다.
현지 가이드가 한참을 출발을 지연시킨다.
알고 보니 이곳 경찰들에 모종의 거래를 원하는 트집이 있는듯!!
식당을 향하는 길목-,
집들의 모양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별반 차이가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동남아 특유의 오토바이족과 툭툭이, 유난히 우리 한국산 차들이 많다.
루앙프라방 (Luang Prabang)은 현 라오어(ຫລວງພະບາງ) 이름.
옛 이름은 므앙 수아(Muang Sua) , 타이식 이름은 11세기 부터 씨앙통이라 불렸다.
비엔티안에서 직선거리 210㎞ 북북서에 위치한 메콩강이 칸 강과 합류한 항구도시.
인구 약 6만으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라오스의 왕도 겸 종교 중심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메마른 지역.
루앙프라방(Louangphrabang)의 역사
1353년부터 란상 왕국의 수도.
1356년 스리랑카에서 옮겨 온 황금불상 프라방을 기려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
1563년경 왕궁이 비엔티안으로 옮겨가고
1707년 란상이 분할될 때 루앙프라방은 새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946~47년 라오스 재편 때 루앙프라방 왕국은 분단.
1975년 페테트라오의 공산혁명까지 왕족의 보호 아래 칠기, 금·은세공품 등을 주조.
상업은 거의 인도, 중국 등 소수 민족이 주도,
사범대학이 몇 개 있으며,
주민의 절반이 옥수수·쌀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는 라오족.
고지에는 라오텡(라오테웅:산악 몬크메르족)족에 속하는 크무족이,
가장 높은 지역에는 메오(먀오 또는 몽)족이 산다
주요건축물;
왓 위쑨나랏(Wat Wisunnarat)-라오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1513년에 사찰을 창건한 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건물.
루앙프라방의 상징인 황금 불상 파방(프라방)을 모시기 위해 건축.
현재는 루앙프라방 최대의 본존불을 모시고 있다.
1887년 흑기군(黑旗軍)의 루앙프라방 침입 시 소실,
1898년 재건. 창건 당시 목조였으나 벽돌과 회반죽을 사용하여 복원.
탓 빠툼(That Pathum) 불탑이 연꽃 봉오리 모양 1932년 보수. 본전과 마주함 .
왓 아함(Wat Aham) ;1818년에 창건된 사원으로 ‘열린 마음의 사원’이라는 뜻,
루앙프라방을 지키는 사당이 있던 자리에 세워짐.
경내에 거대한 보리수나무.
왓 탐모타야람(Wat Thammo Thayalam);1851년에 창건됐다. 외국인들의 사찰
왓 시엥통(Wat Xieng Thong ;황금사원)
300m 높이의 남쪽 메콩강둑에 있으며
1975년 까지 왕실(王室)이 후원.
1560년에 셋타티랏 왕에 의하여 지어진 목조건물로
라오양식의 대표적 사원(寺院).
사원 계단 앞 쪽은 메콩강이 흐르고 강변로에 관광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와시엥통사원 입구 푯말-왓은 사원이라는 뜻.
smoke-free라 되어 있는 한편,
담배 그림에 사선을 그어 놓은 것이 담배를 피워서 된다는 지 않된다는 지 ----
비엔티안에서는 초등학교 3한년 정도의 키 아이가
수 많은 행인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담배 연기를 품는걸 봤었다!
"씸" 법당 뒷벽의 유리 모자이크- “생명나무(Tree of Life)”-
햇빛을 받으면 반짝인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흐렸다.
유네스코가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지목했다.
샌달을 신은 라오승들이 보인다.
라오스는 우리나라의 대승불교와는 다른 소승불교
소승(小乘)이란 히나야나(Hinayana), 즉 작은 탈것(乘).
대승 불교의 불자들이 스스로를,-" 이타(利他)를 목표로 한 탈것이라 하고
다른 파를-, "자기 이익에만(自利) 급급하는 열악(劣惡)한 탈것"이라 폄하한 칭호.
부파 불자들은 스스로를 테라바다(Theravada), 즉 상좌부(上座部) 불교라 부른다.
대승 불교는 육다라밀을 닦아 붓다가 될 수 있다 하나,
상좌부 불교에서는 수행의 여하에 따라
부처가 되기 전의 석존,- 즉 보살의 경지에만 이른다고 한다.
왓 마이; 새로운 사원의 뜻-. 왓 씨엥통 사원과 50m .거리
1751년 부터 1821년 까지 70여년 동안 건축.
1356년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황금 불상 프라방을
1894년까지 한 때 보관하다 지금은 옆 국립박물관에 소장.
Pi Mai Lao 기간은 프라방을 이 곳으로 옮겨와 향수로 파방을 씻으면서 소원을 빈다.
왕궁 박물관(루앙프라방 국립박물관)- 옛 왕궁
1904년 프랑스 식민기에 건립. 공식적인 이름은 하우 캄(Haw Cham).
시사왕웡(Sisavang Vong)왕과 왕자 사방바타나(Savang Vatthana)가 사용.
1975년 공산화 당시 왕족들이 유폐되자 박물관으로 용도 변경되었다.
라오스 전통과 프랑스의 양식이 접목. 계단은 이탈리아 대리석.
응접실에는 역대 왕의 흉상. 벽화는 프랑스 양식, 빛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오른쪽에는 옆 왓 마이 사원에서 가져 온 "프라 방"이라고 하는 불상이 서있다.
83cm이며 50kg. (위키백과,다음백과 참조)
박물관 내부는 촬영 금지
박물관 진입로와 왕궁 밖의 정원은 열대 수종으로 채워진 아름다운 곳.
입구가 매우 아름답다.
마크남타오풍 나무-,허브식물로 위의 신드롬에 쓰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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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시간 동안의 유적지 탐방을 마치고
25KM 떨어진 곳에 있는 쾅시폭포를 향해 차를 달린다.
대형 버스를 두고 16인승 소형 차 2대로 현지 가이드가 계획을 했다.
4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쾅시폭포 입구.
차선이 없는 협소한 길을 차 두대가 아슬아슬하게 비 켜간다.
이곳은 교통 사고시 가해자가 100%를 보상하는 원칙이란다.
우리처럼 80:20 혹은 60:40의 기준이 없다.
버스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니-,
눈 앞에 전개되는 60m 높이의 폭포!!
쾅시(사슴)가 뿔로 받은 곳에서 물이 솟아 났다는 전설이 있단다.
물이 그냥 땅 속에서 솟는지 아니면 작은 개울의 끝인지-- 확인차 올라 가보고 싶었다.
실재로 좌우로 오르는 길이 있다.
약간씩 비가 뿌려서인지 인터넷 에서 본, 옷 벗고 수영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다.
곰사육장
300m 더 내려가면 나비 공원이 있다고 한다.
시골 임시 장터 분위기의 주차장을 뒤로하고 루앙프라방으로 다시 돌아 왔다.
주차장에서 한국 말로 싸우는 남녀가 있다.
이x,저x 욕설을 하는데 부부? 아니면 현지 가이드?
--- 먼 타향에서--- 싸움이 끝나면 둘이 모두 많이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분을 다시 달려 왕궁박물관의 건너편 메칸강가에 차를 주차하고
사진의 좌측 푸씨산엘 오른다.
328개의 계단. 사람들로 꽉찼다.
칸 강.-, 왼쪽으로 흘러서 메콩강과 합류.
푸는 산, 씨는 신성하다는 뜻. 일명 신성한 산이다.
메콩강의 일몰을 흐린 날씨로 놓친게 아쉽다.
오른 쪽 바위 위에 올라서면 신성한 기운을 받는다고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려 줄을 서 있다.
줄 선 뒷 편 좁은 공간에 탓 쫌씨라는 작은 사원이 있는데 그냥 지나쳐 왔다.
산 아래 몽족 야시장이 열렸다.
비가 오면 전기 누전등의 이유로 장이 열리지 않는다는데
다행이 가랑비가 오락가락하여 시장을 볼 수 있었다.
이 야시장은 베트남 전쟁때 미군측을 도왔던 몽족들이 공산정권을 피해 산으로 숨어 버리자,
몽족들을 불러 내릴 심산으로 파테트라오 정권이 계획한 정책의 산물이란다.
지금은 라오족들도 일부참가한다고---.
긴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왔다.
허술한 긴 복도를 지나 2층의 객실에 짐을 풀었다.
어두워서 그냥 지나쳐 왔지만 내일 아침 눈 앞에 나타난 이곳 호텔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가끔 정전 사태가 온다.
일행중 한 가족은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아 씻지 못하고 약간 쌀쌀한 침대에서 겉옷을 입은 채 잠을 잤다 한다.
호텔측에서는 사과 의미로 와인 두병을 선물 했지만---
라오스의 전력은 전체를 수력 발전에 의존 한다.
동료가 샤워하는 동안 T.V.를 켰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뉴스에 한국의 청문회 장면이 반영된다.
아직 공산주의-, 제왕적 권력의 이곳 위정자들이 이 방송을 본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우리나라의 성숙한 민주주의에 부러움?
어쩌면 자신들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 장래의 현실에 잠 못들어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