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시드니-,
외국여행하다 보면 우리나라 차나 기업의 광고를 보게된다.
매우 반갑고 항상 자랑스럽다.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사회등 시끄러운 잡다한 사안들이 너그럽게 이해되어
애국자가 되는 이 또한 해외여행의 묘미!
버스가 해안가 (Rose Bay) 를 달려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가 멀리 보이는
더들리 페이지 언덕에 멈췄다.
이곳 해안을 "Rose Bay"라 한다,
시드니 로타리클럽에서 세운 비석에 각 site의 명칭이 적혀 있다.
더들리 페이지라는 유태인이 경치가 좋은 이 지역을 사비로 구입했으나
그후 정부에 기증했다는, 호주의 부촌- "더들리 페이지"
이 근처 집들은 평범하지만 전망에 따라 300억을 홋가하는 것도 있단다.
Gap Park-영화 빠삐용의 촬영지-
아마 저 절벽에서 빠삐용이 던져진듯!
GAP PARK는 오랜 세월 침식으로 절벽 바위에 많은 틈이 생겨 붙여진 이름.
절벽 위의 마을과 해발 100m 단애에 몰아치는 파도가 장관을 이룬다
1900년 남아프리카 Paardeburg 전투에서 전사한 G.J.Grieve를 기리는 기념비.
WATSONS BAY를 벗어나면 망망 대해-,
남태평양의 바다가 손짓 하는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서 뛰어 내려 자살하는자가 많은듯
"밤 낮으로 당신을 돌본다"는 문구가 자살 충동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줄듯!
실재로 이곳은 개척시대에 많은 장병들이 자살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공동묘지.
바다가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곳에 공원 묘지를 만들어 놓았다.
10여일의 여행에도 집이 그리워지는데 별다른 교통 수단이 없던 당시,
고향을 떠나 멀고도 낯선 곳에 살아야했던 초기 이주민들은 얼마나 본토를 그리워했을까?
이곳에 묻힌 상당수는, 일생을 향수병에 시달리다,
결국은 여기 먼 바다 건너 고국이 보이는 언덕에 묻혔을지 모른다. 어쩐지 짠해 지는 순간이다.
본다이비치(Bondi Beach)
본다이비치(Bondi Beach)는 시드니 중심에서 동쪽 7 킬로미터에 위치.
Bondi 혹은 Boondi 는 어보리진 언어로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영국 관광객들이 성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즐겨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위키백과)
대형 크루즈선이 도착하는 날에는 주차할 공간이 없어 애를 먹는다 하는데
오늘도 대형 버스가 300여명 가량의 유람객들을 태우고 도착했다.
멀리 파란 파도가 넘칠듯 다가서는 해안을 뒤로하고 일광욕 할 수 있는 잔디밭이 둘러 있다.
탈의, 서핑보드등 각종 편의물품점,스낵코너등 간이 식당등이 있다
한편에는 누드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선상 lunch를 위해 페리를 승선하러 가는 중
시드니 시가지
횡단보도 신호기 기둥에는
보행자가 신호를 조정할 수 있는 수동 조절 장치가
폴대에 장착되어 있다.
택시에 silver service라 쓰여 있다. 노인 우대 택시인가?
이층 버스도 다니고-,
Lunchun cruise를 위해 상당 시간 기다리고 줄서기를 한 끝에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통과하는
오전에 다녀 왔던 Rose bay 일주 크루즈를 시작했다.
배를 타자 마자 홀에 가득한 사람들과
전쟁하듯 뷔페식 음식을 퍼 담아 먹고 유람선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릿지가 다가온다
오페라하우스 오른편에 거대한 크루즈선이 마치 어떤 고정 건축물인양 나란히 떠있다.
시드니 하버 브리지(Sydney Harbour Bridge)는
철제 아치교로, 세계에서 4번째로 긴 다리이다.
중심상업지구와 시드니항을 잇는-,
철도, 차량, 자전거와 보행자의 통행을 담당하는 주 교량이며,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호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아치형 디자인으로 인해 지역 사람들은 "옷걸이 (The Coat Hanger)"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위키백과)
사진 중앙의 시드니 타워(Sydney Tower)는,
시드니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호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구조물.
호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은 골드 코스트 지역에 위치한 Q.1 빌딩.
오클랜드 스카이 타워 보다 첨탑이 약 50m 더 높다. (위키백과)
오페라하우스를 육상에서 보러 근처 공원에 버스를 파킹하고
내리막 길을 걸어 베넬렝 곶으로 내려 간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오페라하우스-.
1955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오페라하우스 건축을 공모하자
32개국에서 232점이 응모했다.
1957년 1월 덴마크의 외른 오베르그 우드손이 당선 소식을 들었는데,
사실 그의 설계도는 1차 심사도 통과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심사위원인 세계적 건축가 핀란드의 에로 사리넨은
제대로 된 작품이 없자 낙선된 작품들을 다시 검토했고
이렇게 해서 버려진 우드손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우드손의 작품의 특징은 완벽한 곡선-,
아이디어는 부인이 잘라준 오렌지 조각을 바라보다 “바로 이거야”라고 말했다 한다
그의 작품이 ‘저질 취향’이라며.‘교접하는 흰 거북이들’
혹은 ‘공포에 질린 베일 쓴 수녀들’ 같다는 반대자들의 조롱도 있었다.
난제인 천정의 구조 문제는
우드손의 동향인 오베 아루프가 지붕 구조를 조립식으로 변형함으로써 해결했다.
그의 해법은 조개껍질의 각 부분을 하나의 구면(球面)에서 그대로 잘라내는 것.
2년으로 예정되었던 건설기간이 16년으로 연장되었고
건축비는 원래 350만 달러였지만 최종적으로 5,700만 달러가 예상되었다.
공사비 증가 이유는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지붕을 시도한 적이 없어서
현실적인 비용 추정이 불가능했기 때문.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기부금과 복권을 발행하여 추가 예산을 충당.
1964년 정부가 바뀐 후,
정부는 우드손에게 공사비 절감안을 제시하라고 제의. 우드손이 한마디로 거부하자,
정부는 우드손을 건설에서 제외하고,
오스트레일리아의 홀 · 토드 · 리틀모어 3명의 젊은이에게 작업을 맡겼다.
우드손은 시드니를 떠나면서
다시는 자신이 설계한 오페라하우스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한다.
공사 시작 16년 후
드디어 흰 조개껍질 지붕 10개가 베넬랭 곶에 우뚝 솟아올랐다. (최고 68미터)
지붕 무게는 16만 여톤,
곰팡이가 슬지 않는 스웨덴 타일 100만 장이 깔려 있다
조개껍질 지붕 아래에는 2,679석을 갖춘 콘서트홀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기계식 오르간이 설치되었다.
1973년 10월 20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우드손은 준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후, 20주년 초대에도 불참석
참석한 영 여왕은 “피라미드가 4000여 년 동안이나 세계의 경이로 남아 있듯이,
나는 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그러하리라고 믿습니다.”고 했다 한다
1만 8000평방미터 대지 위에 세워졌고
4만 5000평방미터의 화강암 포장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정면부가 없다는 게 특징.
오페라하우스 광장에 도달하려면 100미터나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창문과 지붕이 벽의 기능을 떠맡고 있는데
지붕을 의미하는 투구들은 여러 층의 공연장과 부속시설이 떠 받들고 있다.
준공 후에도 구설수가 끝이지 않았다.
항상 해풍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대대적인 보수를 받아야 한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기와 8,500개를 교체했는데
이 수리 작업에도 65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우드손의 계획을 바꿔
콘서트 홀과 오페라 홀 위치를 교환하고, 연극무대는 영화관이 되었는데,
방청객과 출연자들은 장소의 협소함, 높은 계단, 작은 홀, 나쁜 음향시설 등을 불평.
당초 오페라가 목표였으나 오페라에 걸맞은 적정시설을 갖추지 못해,
-(록콘서트 · 영화상영 · 집회와 실내악연주에는 문제가 없지만)-,
고전 오페라를 올리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래서 근래 우드손의 원래 설계대로
오페라하우스의 내부 건축을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높다.(이상,다음 백과 참조)
지하 주차장
준공 35년 만인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의 후보로 선정되며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오페라하우스 주변 풍경-, 거대한 크루즈선도 보인다.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공원 옆 거리.
미세스 멕콰리( Macquarie) 체어
식민지 시대에 항해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앉아서 기다렸다는 의자가 있다는---
1868년에 짓기 시작하여 130여년 후인 2000년에 완공된 세인트 메리 대성당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한식당 밀리오네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 오는 길-,
차들이 많이 밀리는데
칼로 자르듯 잘 지켜지는 버스 전용차선 덕택으로 빨리 숙소로 올 수 있었다.
어제와 같은 Parramatta Hotel
시드니 공항-
한국올때도 역시 태평양상에서 기체가 매우 흔들려 불안한 마음을,
여러 편의 영화를 보면서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