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25일-. 중국 구채구를 목표로 길을 떠났다.
일정은-,
인천-시안-황룡-구채구-시안-다시 인천 공항 착
인천공항발 중국 심천항공을 이용했는데
정시 보다 1시간쯤 지나서야 비행기가 출발한다.
각오하고 있던 터라 별 문제되진 않는다.
시안(西安)공항은 800만 시민의 관문답지 않게 세련되지 않은 느낌-.
버스는 곧장 회족거리를 향해 달렸다.
이곳은 같은 모양의 건축물 규제가 없는가 보다.
전봇대와 전선줄.
전봇대 없는 홍콩 거리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가이드 왈-, 이곳에선 경음기 소리가 상대방을 거슬리는 행동이 아니라 한다.
우리 차 운전사 따꺼(大兄)가 계속 크락숀을 울려댄다.
중국 현지에서 각국 유명 승용차들이 생산된다.
아우디,밴스,폭스바겐 등등---
헬멧 착용 않는 것은 보통
횡단 보도 표지조차 없고-
차도에서 겁없는 아가씨들이 뭔가를 벌이고 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각-, 왼쪽 한적한 신발 가게와는 대조적으로,
육포 가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행렬.
시간이 어중간하여
먼저 식당에 들러 현지식 이른 저녁을 먹었다.
현지 시간이 우리 보다 1시간 늦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몇 시간전 도착한 우리에겐 빠른 것은 아니다.
종루 가까이 있는 덕발장은 상당히 이름난 식당인듯-. 교자(만두-)가 이곳 특식이라 들었었다.
아래 숫자는 종업원 구하는 전광판?
식당 앞 거리. 약간 한산하다.
독특하게 생긴 빌딩도 있고-,
성 안으로 진입하는 길
종루-건물에 비해 조그마한 종-,
명나라 때 제작
아마도 지도상으로 이쯤이 시안성의 중간지점인 듯 싶다.
드디어 차에서 내렸다.
시안에서 가장 붐비다고 하는 회족의 거리이다.
B.C.200년경 한무제떼 장건을 서방으로 보낸 이후 시안이 서방세계와의 교류점이 되었고
A.D.900년경에는 장안 인구가 100만을 훌쩍 넘었으며
특히 이슬람족이 대거 거주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징기스칸의 원나라 때 이곳에 들른 마르코 폴로는(1275년)
시안을 세계교역의 중심지라 평했다던가?
골목에 이국적인 묘한 향신료 냄새가 가득하다.
중국 현지 관광객들이 대부분 서양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시안이라는 명칭은 1400년경 명나라때 부터 호칭되다
이후 북경(베이찡), 남경(난칭),중경(충칭)들의 명칭과 대비한--,
"서경" 과 공용.
1943년에 다시 시안으로 불리어 졌다 한다.
고루-, 중앙 북의 윗부분이 약간 보인다.
종루와 고루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축했다 한다.
문화유적지 바로 곁-, 유흥업소도 보이고-,
이동하여 다시 종루를 정면에서-.
사회주의 국가인데-,
자유스러운 젊은이들과 휘황한 조명이 생소하다.
잘 못된 선입견인가?
호텔에 들어와 여행 첫 밤을 보낸다.
눈앞에 시안 성벽이 조명빛을 발하며 빙 둘러서 있다.
이곳 이름은 TITAN TIMES Hotel
마지막날 묵은 방이지만 첫날 머물렀던 객실보다 좋다.
일찍 자야한다.
새벽 이른 시간에 구황공항행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