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예수께서 산상복음을 전파하신 팔복교회를 갔다.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있나니 천국이 저희것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자는 복이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 . .
예수님 당시엔 그냥 언덕이었으리라
팔복산이라는 이름은 나중 붙여진 이름같고, 교회도 팔각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주변 무성한 숲에는 야생 고양이들이 새끼를 놓아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가버나움!!!!----,
옛 마을터를 찾았다.
박물관 입구에서 입장하는 방문객들을 감독하시는 신부님들!
아뿔사- 난 반바지에 양말없는 샌들을 뒷축을 구부려 신고 있어 입장 저지를 당했다.
다시 신발을 펴서 고쳐신고 입장할 수는 있었는데
지금도 가끔 그때의 부끄러운 잘못이 생각나곤 한다.
성지를--,반바지차림으로---,
샌달에 그것도 뒷축을 구부려 신고----.(하나님! 준비없는 마음을 용서하소서!!!!)
근처엔, 열병을 앓고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려 치유했던 것과 유사한 집과
당시의 유물을 정리해 둔 박물관이 나란히 있고
예수님께서 어릴적에 제사장,율법사들과 토론하셨다는 회당이 있다.
당시 베드로의 장모도 회당에의 간접적인 입장 저지를 받았었다.
( 애워 싼 군중 때문--)
예수님 주변에 둘러 서거나 앉아 있었던 수 많은 군중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구원의 손길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방금 전 내 자신 연출했던 미숙한 몸가짐은
나 스스로 무심코 무심한 군중 속 한사람이 되어
누군가에게 목회와 전도의 가림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회당의 뜯겨진 천정 지붕-
마치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듯----
예수님의 주변은 모든것이 가르침과 예지로 가득차 있다!
갈릴리 바닷 길을 버스로 달려 호숫가에 위치한 베드로 수위권 교회엘 들렀다.
무성한 야자나무 가로수 사이 사이에
보일듯 말듯 숨겨진 어린아이 손가락만한 작은 스프린클러들이
갈릴리 호수물을 이용해 사막을 옥토로 바꾼,
못 박히도록 들었던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농업현장을 확인 시켜준다.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다고 선언하신 곳에 위치한 교회-!
이름하여 베드로 수위권 교회!!!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후 만찬을 베풀었다는
예수님의 체취가 느껴지는 곳!!!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못했을 별난 이름의 교회들이 곳곳에 들어 서 있다.
베드로의 다른 별명---반석!!!
회사,학원,사람 이름,서클 이름 등등 수 없이 쓰여진 "반석"이라는 이름----
바로 그 반석이 교회 안에 뉘어져 있다.
베드로는 영어로 "Peter" 히브리어로 Petrus, 바위를 또한 Petra라고 한다.
천국의 열쇠와 베드로에 관한 성경적 해석은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상당한 견해 차가 있으나
기념교회 안에서 우리는 찬송하며 기도하고 은혜에 묻혔었다.
성당 밖은 갈릴리 바닷가.
수면의 높이가 바다보다 212m가 낮은 - 민물 호수-.
예수님의 어릴적 추억이 깃든 곳이다.
이 바다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몇몇 제자들은 어부로서 고기를 잡았었다.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은
연자맷돌을 지고 물속에 던지우는 것이 더 낳다는 비유 속 연자 맷돌--.
오병이어교회!!!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5000명을 먹였던 역사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
벳세다 마을도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었다.
오병이어교회 바닥에 모자이크 된 두마리 물고기와 보리떡
로마시절 크리스챤들은 박해를 피해 서로를 확인하는 암호로 물고기모양을 사용했다.
히랍어(그리스어)로 물고기를 "ΙΧθΥΣ" (익스두스)라 쓰는데
다섯 글자의 첫 머리로 말 맞추기를 하면 ,
Ι(예수스;예수), Ⅹ(크리스토스;그리스도), Θ(데우스;하나님),
Υ(휘오스;아들), Σ(소테르;구세주)
=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들 구세주"란 뜻이 된다.
갈릴리 호수주변,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고였던 갈릴리 호숫물이 흘러 내려가는 요단강이 나온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던 요단강!!
2000여년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 부터 탈출시켰으나
정작 본인은 그냥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던 바로 그 강이다!
그러나---,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우선 실망부터 나온다.
에게!! 요렇게 작은 강이 그 바로 요단강?!
숯한 문학,사상,정치,역사가들 입에 그렇게나 회자되었을 바로 그 강이 요거라니!!
시골 어느 이름 없는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같은 이 강이 요단강이란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
사람들이 흰가운 차림으로 물속에 들어가 침례 의식을 행한다.
각국 언어의 찬송과 기도 소리가 들린다.
다국적 군중들이 쏟아내는 뜨거운 열기는
사람들에서 품어지는 안개같은 수증기와 더불어 지금도 내 눈 앞에 어른거린다.
다시 버스에 올라 남쪽 여리고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몇일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폭탄테러로 무장군인들이 통행을 막는다.
비로소 이곳이 교전중인 분쟁국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다.
행선지를 쿰란으로 바꿨다.
쿰란으로 가는 길엔 올리브나무와 대추야자 농장들이 즐비하다.
쿰란동굴이 있는 절벽 지역을 지났다.
쿰란지역에 거주했던 유대교의 에세네파가
로마군의 습격을 피해 성경을 항아리속에 넣어 동굴 깊숙히 숨겨둔것이
최근 양치기 소년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이라는것!!.
이름하여 "사해사본"으로 역사학자들을 흥분시켰던 절벽에 위치한 동굴.
섭시 40도가 넘는 찜통 더윈데도 습기가 없어선지 별로 더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건조한 날씨 탓에 귀중한 이사야서 사본이 그대로 보존된 것.
이곳에도 키부츠의 한 형태로 쿰란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말을 약간 구사하는 종업원과 맛있고 신선한 점심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남쪽으로 향하여 이스라엘 국립공원 "마사다"라는 곳엘 도착했다.
산정상이 화산 분화구처럼 생긴곳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었다.
걸어 오르려면 중국 황산의 잔도를 가는 것처럼 아찔한-,
좁은 나무로 된 길을 올라야 한다.
이곳에 와서야 처음 알게된,(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곳으로)
헤롯왕이 산 정상에 피신처로 궁전을 건축해 둔 곳이
나중 이스라엘의 최후 결전지가 되었던 곳!!!!-.
목욕턍.저수조와 양곡창고등에 쓰여진 타일조각과 문양들이
당시의 호사스러운 헤롯왕의 행적을 말해준다.
이 마사다요새는 A.D80년경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 침공 당시
이스라엘의 벤야민장군과 960여명의 결사대가 끝까지 항거하다 자결한 곳.
장기전을 대비한 비축군량과 물이 충분하여
포위하는것 만으로는 이 요새를 함락할 수 없다는 것을 안 로마군은
이 요새와 비슷한 산을 하나 더 축조하여 이 요새를 점령했다 한다.
이스라엘은 서기1945년에 이르러 2차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다시 건국되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과서를 통해 많이도 배워왔던 사해바다를 드디어 방문했다.
해발-400m의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육지--.
생물이 살 수없고 사람이 가만 있어도 물에 뜬다는 죽음의 바다!
성경에는 "염해"라 표기한다.
온천에서 옷을 바꿔 입고,
근처에 지천으로 널린 머드를 온몸에 바른 뒤 모두들 물속에 들어갔다.
수영을 못하는 나도 두 팔을 벌리고 누우니 정말 몸이 물에 둥둥 뜬다!!
이 곳 소금,진흙등 미네랄 가득한 특산 광물들은 의료와 미용품으로 쓰인단다
여행 선물로 진흙 비누를 샀다.
탈의장인 스파에서, 40 ℃ 넘는 여름날, 난생 처음 뜨거운 온천수로 몸을 씻었는데 어찌나 시원한지!!!
프랑스 이집트에서 쌓인 피곤이 한꺼번에 물러가는 개운함을 느꼈다.
베다니 마을의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
베다니는, 잘 익은 무화과(=즐거운 집)이라는 뜻
일 열심히 하는 마르다 보다 말씀 열심히 듣는 마리아를 예수께서 칭찬하신 곳.
돌아 오는 길!
누엿 누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 마을에 도착했다.
아랍인들 거주지역으로 위험지역이라서 여행계획에 없던 곳.
하지만 버스기사인 아랍인 아미엘이 자기네 동네에서 주유를 할 욕심으로
차를 대는 바람에 베다니 동네를 방문하게 됐다.
아침 출발 기도시간에 내 기도 차례여서
느닷없이, 갈릴리, 베다니, 겟세마네등을 나열하며 대표기도를 했는데
어쩌면 하나님께서 아미엘의 귀를 열어
그 기도 속 베다니라는 명칭을 기억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시골 동네같은 골목 길 나사로의 무덤이었던 곳에 기념교회가 서 있다.
바로 앞 돌담옆에 겨자씨 나무가 있고,
꼬마 아이들이 겨자씨 한 통씩을 작은 플라스틱 통에 넣고 "1달러"를 외친다.
후에 씨를 넣은 책갈피로 여행선물을 만들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
석양빛에 빛나는 예루살렘 황금 돔이 유난히 반짝인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 밤을 세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곤할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주시리!"버스에서 합창한 "순례자의 노래"는
내 인생 최고의 감동의 찬양으로 아직도 그 은총의 감격이 내 뇌리에 꿈틀거린다.
2차대전 유태인 학살을 기억시키는 홀로코스트의 기념물이 있는 곳을 지나
예루살렘 시가지를 관통하여, 언덕에 자리잡은 숙소 파라다이스 호텔에 도착.
오랫만에 약간 이른시간에 일정이 끝난 관계로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 수학중인 고향 후배 최00목사께 전화를했더니
30분 쯤 지나 호텔로 찾아와 집으로 초대하는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았다.
당시 K.B.S. 예루살렘 통신원으로 활동 중 이었던 터라
방송을 통해서도 가끔 소식을 접했지만
여행중 현지에서 만나보니 어쩐지 자랑스럽기도하고 반갑고---.
한국에서 여름철 창가에 치는 발이 드리워진 집을 들어서자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두손들고 환영한다.
고사리로 만들어진 고향 나물을 식사대접 받고
괌에서 비행기 사고가 나서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변을 당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당시 광주 출신 민주당의원 이었던 신00의원도 사고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거래처의 사위였던 분인지라 애석하고 아쉬운 감정이 컷던것으로 기억된다.